백기완
1933-2021

여든아홉 투사의 삶
여든아홉 투쟁의 장면
“이웃들이 다 어렵게 사는데 네 배지(배)만 부르고 네 등만 따시고자 하면, 키가 안 커!”
1950년, 열여덟 살. 피란길에 올랐던 백기완은 추위를 피해 쓰러져 가는 어느 초라한 집에 들렀다. 집주인이 사진관을 하였는데 정말 똑똑하게 생겼다며 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학교 다니지 못해 학생복을 입어보지 못한 백기완에게 사진으로나마 학생복을 입혀주었다) ⓒ통일문제연구소
1954년, 스물두 살, 전쟁이 끝난 직후 백기완은 벗들과 함께 <자진학생녹화대>를 결성하여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나무심기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 7년 동안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강산에 2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고, 이어서 강원도 양양, 지리산 일대, 경기도 여주 등을 돌며 <자진농촌계몽대>를 조직하여 농민운동에 투신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 ⓒ통일문제연구소
1957년 11월 3일, 스물다섯 살, 남산공원, 나무심기운동 때 만난 아내 김정숙과 혼인 전에 남산에 올랐다. ⓒ통일문제연구소
1960년대 초 삼십대 초반의 젊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1974년, 마흔두 살. 박정희 정권 아래 긴급조치1호 위반으로 의형제를 맺고 박정희 타도 싸움을 명세하였던 독립군 출신 장준하(1918-1975)와 군법재판을 받는 장면 ⓒ통일문제연구소
1975년 5월초, 소백산 등반. 왼쪽부터 백기완 장준하 이철우. 장준하는 3개월 뒤 포천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통일문제연구소
1977년, 마흔다섯 살.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한 포천 약사계곡 표지석 앞에서. ⓒ통일문제연구소
1978년 4월 24일, 유신말기의 서슬 퍼런 시절 성공회 강당에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백범사상연구소(통일문제연구소 전신, 소장 백기완)가 주최한 ‘민족문학의 밤’ 행사가 열렸다. 이날의 행사로 인해 여러 문인과 함께 백기완도 구속 수감되었다. “김지하 양성우 시인 석방하라”, “고은 백기완 선생 석방하라”는 구호가 담긴 대자보. ⓒ박용수
1979년, 마흔일곱 살. 연이은 구속수감과 고문으로 몸무게가 반토막 나기 전 81kg의 건장한 체구였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1985년, 쉰세 살. 광주학살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집단 단식투쟁. 김대중 민추협공동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 문익환 목사가 보인다. ⓒ박용수
1985년, 쉰세 살. 민통련 서울지부의장으로 현판식에서 발언하는 백기완 ⓒ박용수
1986년, 쉰네 살.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던 치안본부를 규탄하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농성 지지방문. 백기완 문익환(1918-1994) 계훈제(1921-1999). ⓒ박용수
1987년 2월, 투옥 중이던 백기완은 고문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한양대 병원으로 옮겨진다. 문익환(1918-1994) 목사의 부인이었던 박용길 장로가 면회 온 모습 ⓒ박용수
1987년, 고문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자마자 유월항쟁의 거리에서 백기완은 지팡이를 짚으며 함께 했다. ⓒ박용수
1987년, 쉰다섯 살. 민주시민대동제에서 연설하는 백기완 ⓒ박용수
1987년, 진압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1966-1987) 열사의 범국민장례식. 최민화가 그린 ‘이한열부활도’ 뒤로 지팡이를 짚으며 행진하는 백기완이 보인다. ⓒ통일문제연구소
1987년 연세대에서 열린 백기완 민중후보 지지 행진 ⓒ박용수
1987년 쉰다섯 살, 제13대 대통령선거 민중후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유세 ⓒ조문호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유세가 열린 서울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
1988년 군사독재를 은폐하는 서울올림픽을 규탄하고 광주학살의 진실규명을 촉구하며 분신한 숭실대생 박래전(1963-1988) 열사 장례위원장을 맡아 행진하는 모습 ⓒ박용수
1990년, 쉰여덟 살. 건국대에서 열린 민중대회 ⓒ박용수
1990년, 쉰여덟 살, 영등포시장 골목. 노동자탄압 경찰폭력 규탄 평화행진 중 진압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맞아 실신. ⓒ통일문제연구소
1991년,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과정에서 압사한 성균관대생 김귀정(1966-1991) 열사 49재 ⓒ민족사진연구회
1992년, 시위 도중 백골단의 구타에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1972-1991) 열사 1주기 추모식 ⓒ민족사진연구회
1992년, 예순 살. 제14대 대통령선거 민중후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 민중후보 유세 ⓒ통일문제연구소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 민중후보 유세 ⓒ민족사진연구회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 민중후보 유세 ⓒ이윤영
1992년 12월의 마지막 날. 대통령선거의 아픔을 딛고 <장산곶매 이야기> 글을 쓰고자 강원도 오대산을 찾았다 ⓒ정인숙
1996년, 예순네 살. 탑골공원에서 열린 한국합섬 노동탄압 규탄대회 ⓒ통일문제연구소
2000년, 예순여덟 살. 615남북정상 회담 뒤 북쪽 조선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식에 초청받아 방문한 평양 대동강변에서 눈물에 젖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2000년, 예순여덟 살. 615남북정상 회담 뒤 북쪽 조선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식에 초청받아 방문한 평양에서 헤어진 지 57년 만에 누님(백인숙) 상봉 ⓒ통일문제연구소
2001년, 예순아홉 살.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노순택
2003년, 일흔한 살. 미국의 이라크침공에 항의하는 반전집회. 대학로 ⓒ노순택
2008년, 일흔여섯 살. 부당해고에 맞선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의 투쟁 지지방문. 서울 금천구 가산동 기륭전자 옛공장 ⓒ정택용
2008년, 일흔여섯 살. 부당해고에 맞선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의 투쟁 지지방문. 서울 금천구 가산동 기륭전자 옛공장 ⓒ정택용
2009년, 일흔일곱 살. 용산참사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촉구집회 ⓒ노순택
2009년, 일흔일곱 살. 용산참사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촉구집회 ⓒ정택용
2011년 6월, 일흔아홉 살. 살인적인 노동자 정리해고 중단을 촉구하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 무기한 고공농성을 벌이던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응원하는 1차 희망버스. 경찰과 용역의 저지선을 뚫고 공장 안에 진입, 폐기물처리 차량 위에 올라 연설하는 백기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1929-2018), 박창수 열사의 아버지 황지익, 원로 평화운동가 문정현 신부가 함께 했다. ⓒ노순택
2011년 7월, 일흔아홉 살. 살인적인 노동자 정리해고 중단을 촉구하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 무기한 고공농성을 벌이던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응원하는 2차 희망버스.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경찰 저지선을 뚫고 한진중공업 공장 앞까지 행진했다. ⓒ노순택
2011년 일흔아홉 살. 민중생존권 위협하는 한미FTA 협정 규탄집회. 왼쪽에 고 노회찬(1956-2018) 의원 ⓒ노순택
2011년, 일흔아홉 살, 쌍용자동차 살인해고 규탄과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 ⓒ정택용
2011년, 일흔아홉 살. 전태일(1948-1970)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운동가 이소선(1929-2011) 여사 장례식 ⓒ정택용
2012년, 여든 살. 전태일(1948-1970)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운동가 이소선 여사 1주기 추도식 마석모란공원 ⓒ정택용
2012년, 여든 살. 쌍용자동차 살인해고 규탄과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4차 범국민대회 ⓒ노순택
2012년, 여든 살. 전국노동자대회 ⓒ정택용
2013년, 여든한 살. 2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정택용
2013년, 여든한 살. 2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정택용
2013년, 여든한 살.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열린 범국민추모대회 ⓒ노순택
2013년, 여든한 살.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 앞 ⓒ노순택
2013년, 여든한 살. 민중비나리 ⓒ정택용
2014년, 여든두 살. 쌀 전면개방 반대 농민대회 ⓒ채원희
2014년, 여든두 살. 양심수 석방을 위한 민가협 1000회 목요집회
2014년, 여든두 살.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노동자 차광호를 응원하는 연대집회 ⓒ정택용
2014년, 여든두 살. 살인적인 노동탄압에 맞서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 광고탑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던 현대차 부품제조사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희망버스 ⓒ노순택
2014년, 여든두 살.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노순택
2014년, 여든두 살. 밀양 765kv 초고압송전탑 강행에 맞서 싸우는 주민들과 연대하는 희망버스 ⓒ노순택
2014년, 여든두 살.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만민공동회 참석 후 청와대로 향했으나 진압경찰에 가로막히다. 좌우에 민중미술가 신학철과 장경호 ⓒ노순택
2014년, 여든두 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집회 뒤 오랜만에 만난 판소리 명창 임진택과 해후 ⓒ노순택
2015년, 여든세 살. 고관절 골절수술 뒤 퇴원하자마자 걷지도 잘 못하던 때, 박근혜표 노동재앙에 맞선 평생 비정규직 시대를 규탄하는 사회원로 회견 제안 ⓒ채원희
2015년, 여든세 살. 민중총궐기 집회 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진 백남기 농민 쾌유와 민중생존권 사수를 위한 행진 ⓒ채원희
2015년, 여든세 살. 민중대회 ⓒ정택용
2015년, 여든세 살. 평택쌍용차 공장 앞에서 열린 쌍용차 문제해결촉구 범국민대회. 좌우로 용산참사 유족 전재숙과 쌍용차 노조지부장 김득중 ⓒ노순택
2015년, 여든세 살.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한겨울 오체투지 행진 중 참가자들이 경찰에 연행되자 눈물 흘리는 백기완 ⓒ이정용
2015년, 여든세 살.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대회를 가로막은 경찰저지선 앞에서 ⓒ정택용
2015년, 여든세 살.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열린 민중사상 특강 ⓒ정택용
2015년, 여든세 살.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열린 민중사상 특강 ⓒ정택용
2015년, 여든세 살.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열린 민중사상 특강 ⓒ노순택
2015년, 여든세 살.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열린 민중사상 특강 ⓒ노순택
2016년, 여든네 살. 거리에서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쉼터 ‘꿀잠’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백기완 문정현 - 두어른>전에 출품할 붓글씨를 연습하는 모습 ⓒ채원희
2016년, 여든네 살. 존경하는 문정현 신부에게 바치는 붓글씨 <돌개바람 갈라치는 외로운 깃발이여> ⓒ정택용
2016년, 여든네 살. 거리에서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쉼터 ‘꿀잠’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백기완 문정현 - 두어른>전에 출품했던 붓글씨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 서나니> ⓒ백기완
2016년, 여든네 살.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기획 ‘70인의 동행’의 첫 행선지로 부여 신동엽 시인 생가를 찾은 백기완. 백기완은 농민운동을 하던 1959년 조선일보에 실린 신동엽 시인의 시 ‘진달래 산천’을 읽고 가슴이 뛰어 그 길로 신동엽 시인을 찾아가 만났다. ⓒ정택용
2016년, 여든네 살. 거리에서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쉼터 ‘꿀잠’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백기완 문정현 – 두어른>전 기자간담회 뒤 문정현 신부와 나란히 걷는 백기완 ⓒ박승화
2016년, 여든네 살. 백기완은 하루 아침에 자식을 잃고 비탄에 빠진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손을 놓지 않은 든든한 어른이었다. ⓒ채원희
2017년, 여든다섯 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규탄과 퇴진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집회 ⓒ채원희
2017년, 여든다섯 살. 박근혜 정권의 국정파탄 규탄과 퇴진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집회.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백기완은 광장과 거리에 서길 주저하지 않았다. ⓒ채원희
2016년, 여든네 살.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노동자생존권을 위한 광화문캠핑촌의 예술가 노동자들과 함께. ⓒ채원희
2017년, 여든다섯 살. 대통령 박근혜가 권좌에서 쫓겨났다. 민중의 힘으로 권력을 바꾼 쾌거였다. 마지막 범국민촛불집회에서 백기완은 축포를 함께 들었다. ⓒ채원희
2017년, 여든다섯 살. 불의한 정권과 야합해온 불교계의 반성과 조계종 적폐청산을 촉구하는 명진 스님의 무기한 단식농성장을 찾은 백기완. 명진 스님은 아이처럼 백기완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김성헌
2019년, 여든일곱 살. 태안화력발전소 야간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잘려 운명한 비정규직노동자 김용균의 장례식.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기력이 쇠한 상태였지만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영정 앞에서 백기완은 울었다. 달라지지 않는 노동자들의 현실에 피눈물을 흘렸다. ⓒ정택용
창경궁, 늙고 마른 백기완, “사람은 말이야 늙고 젊고가 없어...” ⓒ채원희
창경궁, 늙고 마른 백기완, “이 발길로 고향 어머니 무덤에 한번 가보고 싶어...” ⓒ채원희
창경궁, 늙고 마른 백기완. 그가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채원희
창경궁, 늙고 마른 백기완. 그가 뒤돌아 먼 길을 간다. ⓒ채원희
2020년, 여든여덟 살 백기완의 삶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그 중 하나는 경찰과 검찰과 법원에서 날아온 출두/조사/벌금/재판 통지서였다. 이것은 고달프고 가난한 이, 힘겹게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의 손을 잡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오랜 삶의 명예증명서가 아닌가. ⓒ채원희
마냥 쓰러질 것만 같애도 눈깔을 똑바로 뜨고 곧장 앞으로 앞으로 ⓒ백기완
여든다섯 살, 청년 백기완 ⓒ정택용
- 주민등록상 백기완의 생년은 1932년입니다만, 실제 태어난 해는 1933년입니다. 백 선생의 평소 뜻에 따라 태어난 해를 1933년으로, 한국식 나이계산법으로 나이를 표기했음을 밝힙니다.

자료/제작 : 채원희, 송경동, 노순택 등

사진관련 문의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 채원희(010-3665-2779), 사진사 정택용 노순택